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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성서정과(성공회)

달란트 : 마태오 25:14-30의 비유, 고전 그리스, 마카베오서

2020. 11. 21.

『라이프성경사전』(생명의 말씀사 2006)에 의하면, 은 1달란트는 6,000드라크마이다. 1드라크마는 노동자 1일 품삯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 2』에 의하면, 델로스 동맹 당시 주력 군함인 200인(170명 노병+30명 중갑보병 호플리테스) 승선 가능한 군함인 삼단 갤리선(트리에에스) 1척을 건조하는 데 1달란트의 비용이 들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1탈란트는 6,000드라크마로, 당시 직공의 월수입을 15드라크마 정도로 본다. 400년의 차이가 있지만 드라크마는 장기에 걸쳐 양 변동이 미미하던 금속을 바탕으로 측정된 안정된 통화로 노동자나 병사 1일 품삭이 맞고, 매일 일하지는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군함 한 척의 건조에는  6,000 맨데이가 소요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유대의 금은 양금속비는 1:15이다. 별 얘기 없으면 은 단위 화폐이고 금인 경우는 금 200달란트 이런 식으로 말해 준다. 

 

  • 기원전 489년 페르시아제국에 배신한 식민도시 파로스섬을 공략하기 위해 배 60척을 동원했다. 그 때 파로스에 요구한 랜섬(합의금) 액수가 100달란트이다. 
  • 마라톤전투의 영웅 밀티아데스는 파로스섬 공략에 실패하자 사형 선고를 받는데 이에 대한 보석금으로 50달란트를 선고받았다. 나중에 페리클레스도 민회에서 잘못된 국가 지도에 대한 벌금으로 50달란트를 선고받은 적이 있다. 
  • 밀티아데스는 이 돈을 못 갚고 죽었는데 그의 아들 키몬이 대신 갚아야 했다. 키몬은 살라미스해전의 영웅이다. 이 때 아테네의 부자 정치인 칼리아스가 키몬의 누이와 결혼하는 대가로 대신 갚아준다.  
  • 아테네는 마라톤 전투 이후 페르시아의 반격을 대비해 200척의 3단 갤리선을 건조한다. 건조비는 200달란트이다. 이 돈은 칼리아스같은 귀족 부자들이 갹출해서 마련한다. 
  • 살라미스해전에서 패전한 후 에스더의 남편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해전의 명장 그리스인 테미스토클레스에 200달란트의 현상금을 건다. 
  • 아테네는 페르시아전쟁 승리후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 파르테논신전은 산단갤리선 건조 등을 위한 델로스 동맹의 국방비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이 기금은 매년 500-600달란트씩 적립됐다. 
  • 아테네는 기원전 439년 델로스동맹의 맹주로서, 말을 듣지 않는 도시국가 사모스를 삼단 갤리선 60척, 11,000명의 병력으로 점령한다. 이 때 아테네 지휘관은 페리클레스와 극작가 소포클레스였다. 그리고 전쟁 비용 1,400달란트의 배상을 요구했다. 약간 동쪽으로 가면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기원전 732-기원전 722)가 강대국 앗시리아에 바친 조공이 금 10달란트, 은 1,000달란트였다. 
  • 전성기 아테네의 시민은 3만 명 정도인데, 거주민은 6-7만명이다. 1년 국고 수입은 3,000달란트 정도였다. 
  • 펠레폰네소스 전쟁 시에 아테네에 참전을 요청한 시칠리아의 조그만 도시국가 세제스타가 분담하겠다고 한 액수는 60달란트이다. 이에 아테네가 준비한 시칠리아 원정 비용은 군선 100척과 호플리테스 5,000명으로 3,000달란트였다. 동맹국 병사까지 합치면 6만 명 정도가 참전한다. 그런데 실제로 세제스타가 갖고 있는 군비 보유금은 30달란트였다. 
  • 시칠리아 원정에서 패전한 아테네는 시라쿠사에 배상금으로 2,000달란트를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6만 명의 원정군 중 생존자 7,000명은 지하 갱도에서 죽을 때까지 노역하거나 노예로 팔려갔다. 
  • 아테네의 제1계급은 페리클레스,알키비아데스,소포클레스, 투키디데스 등을 들 수 있는데 각자가 1달란트 정도의 삼단 갤리선 한 척 정도는 만들 재력이 있었다. 

이제 외경인 『마카베오(상)(하)』에는 다음과 같은 단서들이 있다. 기원전 142년 즈음 전후다.

  • 하스몬 가문의 셀루코스왕조에 대한 저항은 안티오코스4세(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성전 유린(기원전 169년)에서 시작하는데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은 400달란트와 금 200달란트밖에 없었다. 과부들과 고아들을 위한 기금과 토비아의 아들 히르카노스가 맡긴 돈이었다. 
  • 당시 대제사장 오니아스의 동생 야손이 지배 왕조에게 대제사장직을 사며 내건 금액은 은 360 달란트 현찰 + 외상 80 달란트였다. 또한 학교설립허가를 150달란트에 산다. 
  • 성전에서 일하던 메넬라우스는 대제사장 야손의 심부름으로 에피파네스왕에게 가서 야손보다 은 300달란트를 더 바쳐 대제사장이 되었다. 
  • 안티오쿠스 에피피네스가 이스라엘 성전에서 꺼낸 간 금품은 1,800달란트였다. 
  • 마카베오의 세력을 토벌하려는 셀루쿠스왕국의 니가노르 장군은 유다인 포로사냥으로 로마인들에게 바쳐야하는 배상금 2,000달란트를 마련하고자 한다. 1,000명의 노예 상인들과 선물 계약을 체결하는데 유대 노예 90명이 한 달란트이다. 
  • 셀루코스 왕조에 대한 유대 민족 독립군 장군인 요나단을 트리폰은 화친인 것처럼 속여서 포로로 잡고 그 랜섬으로 100달란트를 요구한다. 트리폰은 100달란트를 받지만 요나단을 석방하지 않는다.  
  • 셀루코스 왕가는 하스몬 왕가의 요빠, 게젤,예루살렘 점령에 대한 대가로 배상금 500달란트와 별도의 세금징수세 500달란트를 요구한다.이에 대해 하스몬 왕가의 시몬은 요빠와 게젤에 대해서는 합해서 100달란트 정도에 합의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 밖에

기원 66년 총독 플로우스(Gessius Florus)가 예루살렘 성전금고에서 17달란트를 강탈한 사건이 발생한다. 유대인들은 그를 거지라고 놀리며 동냥을 해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댓글

마태오복음노트

2020. 10. 27.

22장 41-46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인가? 

 

2020.10.25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겠느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 

'주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이르신 말씀, 냐가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시편110:1)하지 않았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시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후로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H.N.Ridderbos(1950), 마태복음 주석(하) 649p

  •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가졌던 메시아 대망에 관하여 상세히 알 수 없으므로 , 이 구절들을 완벽하게 해석하기가 힘들다."
  • 예수님 자신이 다윗의 혈통이셨다. 
  • 메시아의 다윗 계통 출신설을 전제로,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메시아의 다윗 자손으로 오심과 다윗이 그 메시아를 주로 칭하고 있음을 조화시켜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 자격에 더 중점을 두고 조화시켜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 적어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그가 오면 이스라엘 민족의 신정정치가 회복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 틀림없다.  

 


내 생각을 보탬

  • 시보다 몇 백년 전인 남유대시대의 특별한 사람을 지목한 구약의 메시아(그리스도) 구절을 시대를 초월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가져다 쓰는 해석법은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적어도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공유했음을 알 수 있다.

 

댓글

헤르만 리델보스 저/ 오광만 역, 『마태복음(상),(하)』(여수룬 출판사 1990/ 1987 영역본. 원본 네덜란드어 1951) 메타데이터

2020. 10. 26.

aladin.kr/p/7F8rl

 

마태복음 - 상

마태복음 - 상

www.aladin.co.kr

 

저자 : Herman Nicolaas Ridderbos, 1909 ~ 2007 . 네덜란드 출신. 대표적인 네덜란드 개혁파 (the Reformed Churches in the Netherlands) 신학자.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 박사. 1943년부터 캄펀(Kampen)신학교에서 신약신학 40년간 강의. 대표작 『하느님 나라』( When the Time Had Fully Come),『바울과 예수』(Paul and Jesus),『마태복음강해』(Matthew'sWitness to Jesus Christ

스위스의 오스카 컬만(Oscar Cullmann)의 구속사적 해석방법을 이어받아 발전시킴.

 

        참고 링크 : chedulife.com.au/%EB%84%A4%EB%8D%9C%EB%9E%80%EB%93%9C%EC%9D%98-%EC%84%B1%EA%B2%BD-%EC%8B%A0%ED%95%99%EC%9E%90-%ED%97%A4%EB%A5%B4%EB%A7%8C-%EB%A6%AC%EB%8D%B8%EB%B3%B4%EC%8A%A4-herman-nicolaas-ridderbos-1909-2007/

 

네덜란드의 성경 신학자, 헤르만 리델보스 (Herman Nicolaas Ridderbos, 1909 ~ 2007)

네덜란드의 성경 신학자, 헤르만 리델보스 (Herman Nicolaas Ridderbos, 1909 ~ […]

chedulife.com.au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Reformed Churches in the Netherlands)는 네덜란드 프로테스탄트 교단 중 두 번째 규모의 교단이었으며 Dutch Reformed Church와 함께 양대 네덜란드의 개혁 교단이었으나 2004년 PKN(Protestant Church of in the Netherlands)와 합병했다.  개혁 교회 전통은 2차 대전 이전에는 고전적 네오칼뱅주의적이었으나 2차 대전 이후에는 개방적이고 다양한 신조를 허용하는 쪽으로 변한다.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의 대표적 리더는 네덜란드 수상이기도 했던 신학자-정치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1832-1020)였다. 

참고 : 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49

 

오늘 한국에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지도자는 없는가 - 미래한국 Weekly

“열개의 머리와 백개의 손을 가진 자”라는 칭송을 받았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다방면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으며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의 신학을 세계화시키는 일에 그의 전 생애

www.futurekorea.co.kr


서론 

 

ta logia "슐라이어마허 이후 이 문구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수집해 놓은 일종의 어록집으로 이해되어 왔다."

a Gospel : 복음서

 

이레네우스의 언급 : "이레네우스에 따르면, 마태는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그들의 언어로 복음서를 쓴 반면, 베드로와 바울은 그 복음을 전파하였고 로마에서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베드로와 바울이 죽은 후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자였던 마가는 베드로가 전파한 것을 기록하였다. 더욱이 바울의 동행인이었던 누가는 그의 복음 메시지를 기록하였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요한은 그가 에베소에 있을 때 복음서를 출판하였더는 것이다." 17p

 

1.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로 가버나움의 세리였고 알패오의 아들이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그를 레위로 부른다. 세관에 앉아있는 그를 예수님이 부르자 따라나온 것을 볼 때(마태오 9:9), 그들은 구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저자가 그 마태라는 전승(여러 초기 기독교 작가들의 언급. 가령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은 있지만 실증적 증거는 없다. 

 

2.

형태와 구성으로 볼 때, 창의적인 그리스 작품이다. 번역서가 아니다. 마태복음 6:16, 16:18, 24:30에 나타나는 그리스어 말장난. 하지만 결정적인 반증까지는 아니다. 

 

3.

공관복음서들 (마태,마가,누가복음) 전체를 볼 때, 세 공관복음서들은 독립적으로 기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다같이 마가복음에서 발견되는 것과 다른 순서를 제시하는 법이 없다.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에 의존한다고 일반적으로 본다. 그리스어 본문상의 비교로 볼 때, 마태복음도 마가복음에 의존했을 것이다. 마가복음의 기초는 아람어 본문이었을 것이다. 

 

3-1.

마태복음의 어휘와 문체는, 구전에 보다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 마가복음보다 훨씬 더 학식있는 것들이다. 

 

3-2.

마가는 사도들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복음은 사건의 생생한 묘사나 소상한 기술에 있어 다른 공관복음서 저자들보다 월등하지 못하다. 마가나 누가 어떤 사람도 예수님의 생애 처음부터 따라다녔던 사람이 아니다. 

 

4.

Q(Quelle)자료 혹은 ta Logia가설 : 마태와 마가가 공유하는 원자료가 있다는 가설은 인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5.

"복음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역사적인 서술이 아니며, 그렇다고 분명한 전기적인 관심을 기울인 예수님의 전기도 아니다. 오히려 복음서는, 교회의 공통적인 소유가 되었고 그 초석을 형성한 예수님에 관한 증거 및 전승을 구현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일반적인 공관복음의 전승이며, 어떤 의미에서 비인격적인 특성인 것이다."

 

6.

"마태의 이름은 고래로부터 첫 번째 복음서에 붙여졌던 이름이다. 앞에서 논의한 것에 비추어 우리는,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생산함에 있어 마태가 수행했던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7.

예루살렘 패배에 대한 언급이 대단치 않거나 없다고 볼 수 있는 점에서 AD.70년 이전에 쓴 것이다. 한 유대인에 의해 유대인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임은 확실하다. 세부 묘사들이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것들이다. 

 

8.

마태복음의 주요 목적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고 그들의 선조에게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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