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고대 그리스철학의 주제에서 시작하는 존재론의 '존재'는 existence의 번역어가 아니고 being의 번역어이다. 그리스어에서 existence에 해당하는 단어는 고대에는 'to stand out'의 의미였을 뿐이였고 오늘날의 '존재'라는 뜻은 그 단어에 없었다.
정의(Definition)는 최근류의 종차를 말해주는 것이고, 개념적 탐구는 이러한 정의적인 방법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인데 존재는 모든 류의 최상위류이므로 최근류가 없다. 따라서 정의될 수 없다.
그런데 숫자가 존재한다, 내가 존재한다, 삼각원이 존재한다라고 할 때 존재의 의미는 다 다르다. 이것은 류의 단일성과는 다르다. 류의 단일성은 가령 '동물'은, 개는 어떠어떠한 동물이다, 치타는 어떠어떠한 동물이다, 사람은 어떠어떠한 동물이다라고 할 때 동물이다의 의미는 모두 같다. 이렇게 존재의 다르면서도 같은 단일성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비의 단일성이라는 특별한 단일성으로 보았다. 다른 류들은 개별적인 종의 차이를 삭제하면서 추상화된 것이지만 존재는 그렇지 않고 모든 차이성을 다 갖고 있다. 또한 류는 다른 류와 경계를 이루고 대비되지만 존재는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초월적(transcend)이다.
여기서 번역이 좀 필요하다. 존재는 모든 류의 최근류가 맞다. 그런데 유럽어에서 존재는 'being'(독일어로 seiend)으로 동시에 be동사와 관련이 깊다. 그래서
He is.
He is an animal.
That number is big.
A mountain made of water is there.
등에서 존재(is 즉 being)의 의미는 각각 다르지만 그렇다고 동음이의어는 아니므로 유비적 단일성을 이룬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서양철학에서 '존재'의 문제는 곧 존재의 의미로 쓰이는 'be(einai)' 동사의 문제인데, 서양에서는 be 동사가 '있다'(존재)의 의미와 '이다'(계사[,copula])의 의미로 함께 사용되므로 그만큼 존재의 문제가 더 복잡해 진다."(한자경,'실체의 연구'(2019) 61쪽)
이 언어적 차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대한 참고가 필요하다.
이기상의 역주(568쪽) :
"우리는 어떤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키지 않고 멋대로 행위할 때, "그 사람은 야만적이다"라고 말하면서 야만적 존재로서의 그 사람의 못된 측면들을 열거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말의 일상적 사용에서도 어떤 것의 어떠함 또는 무엇임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다'를 '무슨 무슨 존재'라는 용어로 바꾸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용법이 우리말에서는 자세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는 서술적 용법으로서의 '존재'의 의미이며,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의 서구 언어권에서는 이러한 '연계사[copula]'로서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자명하게 '존재'의 의미 속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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