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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도나투스파.

2021. 6. 23.

"기독교인들이 교회 일치를 주장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비정통적 교리(이단)들이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유발하여 기독교 자체가 로마 정부로부터 감시를 받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폴 존슨, '기독교의 역사')

 

"2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을 조직적으로 박해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 초기 순교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나중에 이단으로 분류하게 된 부류의 기독교인들이었다."(폴 존슨, '기독교의 역사')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북아프리카 알제리 출신으로 지금의 튀니스인 카르타고에서 공부했다. 카르타고는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에 버금가는 로마의 도시였다. 383년부터 로마나 서유럽의 중심 도시 밀라노에 있었던 그는 밀라노에서 마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뒤  395년부터 고향 근처 히포의 주교로 나머지 일생을 보낸다. 참고로 313년에 로마제국에 기독교가 공인되었다. 이제 로마 제국의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의 최고 주교임을 선언한다는 뜻이다. 376년 경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395년엔 동서로마가 분리되었다. 429년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살던 카르타고 지역은 반달족에 의해 폐허가 된다.  

 

카르타고 지역 출신 중에는 테르툴리아누스(160-220)가 있다. 그는 세례를 받은 후 중죄를 지은 자를 교회가 용서해 주는 당시 새롭게 창작된 고해성사라는 제도를 부정한 최초의 프로테스탄트였다. 그 밖에도 만인사제주의, 여성성직 등을 주장했는데 이는 이미 카타콤 시절부터 성장해온 성직자의 특권적 지위를 문제삼은 것이다. 이 때가 313년 이전인 것을 생각해 봐야한다. 250년 경 로마시의 교회는 주교와 46명의 사제 등이 있었으며 이미 부유했고 많은 자선 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또한 이미 부패한 상태였다. 313년 이후라고 나아진 것은 없는데 366년엔 로마의 주교직을 놓고 전쟁이 터져서 137명이 죽었다. 히에로니무스 등의 교부들은 성경에 비추어 이런 현상들을 한탄했는데 그 당시에 성경의 기준은 너무 이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성 암브로시우스(340-397)가 세례를 받고 8일만에 주교가 되던 시대였다. 암브로시우스의 아버지는 갈리아 지역 통치자로 로마의 6대 귀족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테오도시우스황제를 파문할 힘도 있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평신도에서 바로 주교로 임명됐다. 문제점에 대한 끊임없는 국가 차원의 입법이 시도됐지만 그 이후 천년 정도가 한참 지나도 사정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250년부터 로마제국은 기독교도에 대한 공식적인 박해에 들어간다. 그 전까지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면 국지적인 납세 거부 소요 등 일상적인 것뿐이었다.  이 시기에 불법이지만 공공연히 귀족층에 침투된 광범위한 교회는 보편성을 강조하게 길들여지고 마카베오적인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해방자 예수는 탈색되어간다. 

 

313년이 되자 죽은 자와 산자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로마제국의 박해 기간 살아남은 자들은 일봉의 변절자들이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고향 고대 카르타고 지역은 로마제국 내에서도 반골성향이 강했고 카르타고 교회는 저항의 온상지였고 보다 유대교에 가까운 기독교였고 공식적인 박해 기간동안 엄청난 박해를 받고 살아남았다. 311년에 카르타고 교회는 주교로 부임한 케킬리아누스를 거부했는데 박해 시절 성경책을 불태우도록 용인한 자(이런 자들을 트라디토레스 traditores라고 불렀다.)가 그를 안수했기 때문이다. 대신 카르타고의 80여 명의 주교들은 도나투스를 카르타고 주교로 임명한다. 이들을 도나투스파라고 한다. 콘스탄티누스황제는 고민 끝에 케킬리아누스를 지지한다. 도나투스파에도 배교했던 경력이 있었던 주교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반제국주의운동을 일으킨다. 이들은 로마 지지층의 부유층보다 가난한 원주민들을 지지세력으로 업고 있었다. 347년에 케킬리아누스의 요청으로 도나투스파를 제압하기 위한 군대가 들어왔지만 많은 순교자를 낳고 이 사건 이후 도나투스파는 더욱 성장한다. 그러자 로마는 도나투스파를 이단으로 지정한다. 이 사건은 로마 제국과 보편적 공교회의 제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도나투스파는 500명이 넘는 주교를 거느린 교회 조직이었고 전례나 가르침은 정통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은 순찰대를 구성해 대토지소유자, 제국주의자인 케킬리아누스잔당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이 지역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파를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도나투스파를 '버림받은 사람들의 미친 무리'라고 비난했다. 도나투스파는 히포의 정부 제빵 공장을 운영하는 등 세력이 강했다.  411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로마제국과의 협상 과정에 300명의 주교를 동원할 정도로 막강했다. 히포의 주교 시절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들을 다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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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 기독교의 역사 - YES24

역사가가 보여주는 새로운 기독교의 역사로마제국 변방, 유대교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던 기독교가 오늘날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또한 서양문명의 설립과 역사 발전에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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