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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며

2021. 9. 18.

무신론자들이 신의 부재를 여러가지 형태로 말하기 시작한 역사는 300년이 채 안됐음에 비추어, 2,000년 동안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심지어는 지루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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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낭만주의라는 보물섬

2021. 7. 8.

피터 왓슨의 '저먼 지니어스' 서문을 읽다가 독일 낭만주의의 풍부함을 발견했다.

 

닐 퍼거슨의 '제국'(2003)을 보면 과연 피터 왓슨이 말한 것처럼 '나치즘을 패배시킨 것이 영국의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는 과정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유럽 진영에서는 혼자 치르면서 대영제국은 불과 한 세대 만에 파산했다. 덕분에 독일이라는 나라를 1871년에 만들게 된 심성상의 원동력이 된 낭만주의의 흐름들은 모두 마르크스, 혹은 히틀러에 이르는 길이라는 도식을 얻게 된다. 특히 영미 지식 세계의 식민지가 된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19세기 중반 이후 화학, 전기 등에서 독일은 혁신을 주도했는데 주로 영미학자들이 쓴 과학사책에서는 길게 언급되지 않는다. 

 

빙켈만의 획기적인 저서 '고대미술사'가 나온 1754년부터 에르빈 슈뢰딩거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1933년까지 독일은 지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서구의 열등 국가에서 강대국으로 올라서면서 프랑스나 영국, 네덜란드, 나아가 미국보다도 사상의 영역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피터 왓슨, 저먼 지니어스)

 

1933년 1월, 히틀러가 총리가 되었을 때 독일은 지식의 측면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적인 강국이었다. (피터 왓슨, 저먼 지니어스)

 

또한 19세기 독일의 전성기에 앞선 독일의 문화적 전성기인 1780년 경부터 1806년경까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독일낭만주의의 실천 속에서 독일에서는  낭만주의와 역사주의에 잘 어울리는 생물학과 역사학뿐만 아니라 물리학이나 수학의 어마어마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히틀러에 이르는 길인' 이 낭만주의로부터 물리학이나 수학 등에 이르는 어휘들과 연결이 부르바키그룹에 의해서 지워지고 그 외형적 엄격함만 남아버렸는데 현재는 모두 그런 세계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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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먼 지니어스

2021. 7. 5.

"빙켈만의 획기적인 저서 '고대미술사'가 나온 1754년부터 슈뢰딩거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1933년까지 독일은 지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서구의 열등 국가에서 강대국으로 올라서면서 프랑스나 영국, 네덜란드, 나아가 미국보다도 사상의 영역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피터 왓슨, 저먼 지니어스)



당시에 모든 국가는 국교제도를 채택했는데 프로이센은 17세기말부터 루터파의 신학 중심이 아닌 마음과 실천 위주의 국가경건주의를 채택하여 경건주의 목사들과 교수들이 국립대학인 할레대학 등을 장악하게 했다.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는 합리적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적 신학이 주류였으나 독일 지역은 달랐다. 1802년부터 프랑스대혁명의 경험으로 영국과 프랑스도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신앙의 흐름이 꺾이기 시작한다. 독일 지역의 경건주의는 영국의 체험중심의 감리교에 직접 영향을 주고 나폴레옹은 교황청과 화해한다.

독일 지역의 지식인들은 프랑스대혁명을 환영했으나 공포시대(1793-1794)를 지나며 기요틴 정치에 구역질을 느꼈고, 1806년 예나전투에서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패하고 1814년까지 지배받게 되는데 이 시기에 프로이센은 고통스러운 자기 반성을 하고 개혁에 노력하게 된다.

괴팅겐 대학의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1752-1840)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 등 19세기 전반의 중요한 생물학자 중 절반을 가르쳤다. 그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수많은 실험 결과 생물에게는 형성 충동(Bildungstrieb)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제자인 빌헬름 폰 훔볼트(1767-1835)는 물질이 여러 힘으로 이루어졌고,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형성, 번식, 습성인데 이것이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을 만들기 때문에 국가는 유기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서 교양(Bildung) 개념은 이상적인 국가를 향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바로 이 훔볼트가 1810년 개혁기에 프로이센 장관으로 베를린대학을 만든다. 철학부(교양학부)를 중시하고 공무원이 될 사람들에게 수준 높은 교양 교육을 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세미나 제도를 키웠는데 참여자들은 상당한 금액의 장려금을 받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공무원 승진에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교양학부 졸업자들은 인문계 중고등학교인 김나지움의 교사가 될 수 있다. 김나지움과 김나지움 졸업시험인 아비투어 제도를 만든 것도 훔볼트이다. 김나지움이 늘어나면서 수준 높은 교양에 맘놓고 몰두하는 중간계급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독일은 학술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논하는 낭만주의 헤겔파의 관념론은 프로이센 국가의 공식적인 철학이면서 셸링의 무의식 개념 등 심리학이나 생물학, 진화론 발전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는데 1830년대 이후엔 자연 과학의 발전이 작동되기 시작하여 실제로 화학이나 생물학 등이 곧 분화되자 1840년대부터는 인기가 없는 분야가 되고 만다. 1850년대가 되면 미국,영국에서 독일의 대학 제도를 배워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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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먼 지니어스 - YES24

이 독일을 보라!칸트에서부터 헤겔,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아인슈타인…….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3세기 동안 무수한 성취를 남긴 독일 천재들,나치, 히틀러, 세계대전에 가려진 그 찬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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