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어스틴에 따르면, '1880년대 미국의 야심 찬 젊은 역사가들과 정치학자들은 독일에 공부하려고 몰려갔다. 돌아올 때 그들은 박사학위를 가지고 왔다.'"(강준만, 미국사 산책 4)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15년 5월 영국의 루시타니아호에 탄 미국인 128명이 독일의 U보트 공격으로 숨졌을 때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아일랜드계와 독일계는 미국이 영국과 동맹을 맺을까봐 걱정했다. 유대계 미국인 상당수가 독일계였는데 이들도 독일의 가족들을 걱정했고, 유대인을 가장 많이 탄압하는 제정러시아와 미국이 손을 잡을 것을 우려했다.
독일이 무제한잠수함 작전을 벌이고 독일 외무상 짐머만이 멕시코에 보낸, 대미 전쟁을 부추기는 내용의 전문이 밝혀지자 1917년 4월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반독일 히스테리가 거세게 밀려왔다. 독일어 신문들을 폐간하자는 주장이 제기됐고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교육과정에서 독일어가 빠지는 학교가 생겼다. 도서관에서 독일어 책을 불태웠다. 델라웨어주, 몬태나주 등 몇 개 주에서는 독일어 교습을 금지시켰다. 대학에서도 독일의 위상이 쇠퇴했고 미국 문학이 탄탄한 위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1910년에 독일계는 500만 명이었고 이민자 그룹 가운데서도 가장 존경받고 높은 지위를 누린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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